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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화요논평) ‘평화집회’? ‘새로운 주체’? 틀려도 한참 틀렸다

[‘평화집회’? ‘새로운 주체’? 틀려도 한참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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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차 집회까지, 최근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하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는 대규모 집회가 매주 열리고 있다. 그간 연이어 진행된 집회 풍경은 언론에 의해 평화적이며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그려졌다. 집회문화가 과거 ‘폭력 시위’에서 ‘평화집회’로 거듭나고 있다고 평가됐다. 여기에는 가족 단위의 참여와 여성, 청소년 등 ‘새로운 주체’의 등장이 부각됐다.

 

그러나 ‘평화집회’로 거듭났단 평가와는 달리, SNS에는 집회 현장에서 성추행을 경험한 여성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성들은 성추행과 외모품평 등을 비롯한 집회 현장에서 일어난 온갖 인권침해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또한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 대해 ‘여성’이라는 성별을 부각해 여성에 대한 비하•멸시를 담은 혐오표현(“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丙申년”, “저잣거리 아녀자” 등)이 오프라인 집회 현장과 온라인을 막론하고 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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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에게 ‘평화집회’란 말인가? 권력층의 부패를 비판하며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광장에 나온 여성들이 여성에 대한 멸시와 차별, 폭력을 맞닥뜨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집회 현장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다시 한 번 연대를 견고히 하는 ‘남성 가부장’ 권력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속에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번 ‘평화집회’가 가능했던 원동력이 여성, 청소년, 가족 등 ‘새로운 주체’들의 등장 때문이라는 시각도 마뜩찮다. 한 뉴스기사는 이들을 두고 “그간 행동에 소극적이던 집회 주체들이…”라는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평가까지 더했다. 애초에 국가의 ‘국민’, ‘시민’에 대한 기본 설정에서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주체도, 권력층의 전횡에 저항하고 다시 새로운 기득권을 창출하는 주체도 ‘남성 가부장’이었단 얘기다. 그 ‘새로운 주체’, ‘소극적 주체’들이 그간 사회변혁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성별, 장애, 연령, 성적지향 등에 근거한 편견과 차별에 저항해 온 소수자 운동의 역사는 송두리째 무시되었다. 또한 이미 현장에 존재해왔음에도 이들이 주체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든 그간의 집회문화는 고려에도 넣지 않았다.

 

그러니 ‘평화집회’니, ‘새로운 주체’니 하는 말들은 맞지 않다. 여성들은 그곳이 집회현장이든 어디든, 결코 평화롭지 않으며 여성에 대한 멸시와 폭력에 싸우는 중이다. 여성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사회구조와 언설 속에서 여성들은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의 주체로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쭉 행동해 오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그토록 소리 높여 외치는 ‘민주주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온존하는 한 결코 성취될 수 없다는 명징한 진리를 더 이상 외면 말라.

 

 

* 관련기사 http://goo.gl/uSY3ry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16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