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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성폭력을 지우는 방법 세 가지 (2018.04.18)

[한국사회가 성폭력을 지우는 방법 세 가지]

 

※ 카드뉴스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Ka17VHMTYvE

 

첫 번째, 성폭력을 성관계로 만든다.

전 국민 성폭력예방교육시대. 학교에서는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힘의 차이를 이용해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성적행위”(여성가족부·한국여성인권진흥원(2014), 아동·청소년 성폭력 대응매뉴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자가 키스나 애무를 허용하는 것은 성관계를 허용하는 뜻이다’ 48.2%
‘여자가 처음 만난 남자의 집에 가는 것은 성관계를 허락한다는 뜻이다’ 42.5%
‘여자가 ‘싫다’고 말하는 것은 진심이 아닐 수 있다‘ 35.7%
‘연인관계에서 싸우고 난 후에 성관계를 하는 건 화해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30.2%
‘여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강제로 성관계(강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0%
‘연인관계에서의 스킨쉽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28.3%
- 각 문항에 ‘그렇다’고 답변한 남성응답자 비율 (여성가족부,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상대가 동의한다고 말한 적도 없고, 심지어 ‘싫다’고 말했는데도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말하는 ‘성폭력’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런 사회는 모든 성폭력을 ‘성관계’로 만듭니다.


두 번째, 성폭력을 범죄가 아닌 것으로 만든다.

한국은 성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률이 있습니다.
여타의 범죄보다 형량도 높고 처벌이 강하다고 하죠.
그러나 성폭력 신고율 1.9%(여성가족부,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대부분의 성폭력은 신고조차 되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은 줄일 수 있다’ 55.2%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 54.4%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47.7%
‘성폭력(강간)을 당한 여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39.2%
‘수치심이 있는(아는) 여자는 강간신고를 하지 않는다’ 35.6%
- 각 문항에 ‘그렇다’고 답변한 남성응답자 비율 (여성가족부,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폭력의 원인과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에서
성폭력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신고하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헤아릴 수조차 없는 2차 피해를 ‘견뎌야’ 하는 일이 됩니다.

법률에는 강간, 강제추행 등 형법상 관련 죄목만 나열되어 있을 뿐, 성폭력범죄에 대한 정의가 없습니다. 또한 강간 및 강제추행의 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은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최협의설)여야 한다는 해석이 여전히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수사·재판과정은 가해자에게 ‘의사에 반하지 않았음’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끝까지 저항할 수 없었음’을 입증하라고 요구합니다.
신고를 해도 성폭력사범 10명 중 6명은 기소조차 되지 않고, 재판을 통해 유죄가 확정되어도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DB, 양형위원회 성범죄 일반강간 선고내역)
성폭력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커녕 분명한 처벌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세 번째, 성폭력 신고를 허위신고로 몰아간다.

‘강간을 신고하는 여성들은 상대에 대한 분노나 보복심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31.3%
- 각 문항에 ‘그렇다’고 답변한 남성응답자 비율 (여성가족부,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여성의 말을 믿지 않고, 의심부터 하는 사회는 성폭력이 아니라 피해자를 판단합니다.
수사기관과 언론은 ‘꽃뱀 vs 억울한 남성’ 프레임으로 성폭력 무고사범 집중 단속과 홍보에 나서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해 ‘밑져야 본전’ 역고소를 남발합니다.

“2013. 6. 19. 성폭력범죄에 대해 친고죄가 폐지되는 등 성범죄자에 대해 처벌이 강화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 다양한 유형의 성폭행 무고가 빈발되고 있음. 만약 무고사실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억울한 수감생활 뿐 아니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공개·고지명령 등의 불이익을 입게 되고, 누명으로 인한 가정파탄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면밀한 수사가 필요” (○○검찰청 보도자료, ‘늘어나는 성폭력 무고, 더 이상 안돼요!!’, 2014.5.12.)

유독 성폭력 무고사범에 집중해 홍보를 할 만큼, 성폭력은 다른 범죄에 비해 허위신고가 많은가요? 현재 한국에는 전체 무고범죄 및 성폭력범죄 대비 성폭력 무고범죄 접수 및 처리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도 없습니다. 다른 범죄에 비해 압도적으로 신고율이 낮고 처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성폭력범죄에 대해서 유독 허위신고를 특별하게 염려하고 단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폭력과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이 강한 사회에서 성폭력은 언제든 의심스럽고, 성폭력이 아닌 것이 되며, 피해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 “꽃뱀”이 될 수 있습니다. 성폭력은 피해자가 유발하는 것이니 피해자가 예방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고, 가해자는 ‘호기심’에, ‘성적본능’에, ‘유혹’에 넘어가 ‘우발적’으로 한 것이니 죄를 감면해줘야 하는 것이 됩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제8차 한국 심의 최종견해로, 형법상 강간죄 정의를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개정할 것, 배우자강간을 범죄화할 것,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 등 형사소송절차 상의 남용 방지를 위한 조치와 성 이력 증거 채택 금지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성폭력은 ‘성적의사결정권’에서 나아가 신체적·성적·정신적 ‘통합성(intergrity)’에 반하는 인권침해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범죄의 판단기준을 ‘의사에 반한’ 행위에서 나아가 ‘적극적 합의 여부’로 규정하고, 범죄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수사기관과 가해자에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기준에 따라 성폭력범죄의 정의부터 법률에 명문화해야 합니다.

“강간을 포함하여 성폭력을 신변 안전 및 육체적, 성적, 정신적 통합성(integrity)에의 권리에 반하는 범죄로 특징짓고, 배우자강간, 지인강간, 데이트 강간을 포함하여, 성범죄의 정의가 자유로운 동의의 부족에 기반을 둔 강압적인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장하라”
-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젠더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일반권고 제35호, 29(e)

성폭력을 지우는 한국사회에서 침묵을 강요당했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성폭력의 본질에 대한 접근 없이 통념에 입각해 ‘진짜’, ‘가짜’를 운운하는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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